SPOILER ALERT!!
게임 명일방주의 스토리를 매우 많이 언급합니다. 모르고 싶으신 분들은 주의.
사세행 이벤트가 곧 온다. 쉐이 남매 스토리의 완결편이라고 하던데, 완결이 오기 전에 이 장편 시리즈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화중인. 그림 속의 사람.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시를 지칭함과 동시에 시가 작중인물들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영제 Who is Real이 시가 던지는 질문이다.
그림 속 세상에서 누가 가상이고 진짜인지 가려낼 수 있는지, 무엇이 진짜를 진짜로 만드는지 답을 찾는 이야기다. 죽음이 두려워 그림 속에 틀어박힌 시가 세상으로 나와 니엔과 함께 행동한다는, 쉐이 장편 스토리의 서막. 이전에 엔션트 포지가 있기야 하지만 그건 극중극 미니 이벤트니까 빼고. 서막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시 개인적인 이야기라 쉐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엿볼 수 있는 요소는 별로 없다.
장진주. 술을 권함. 당나라 시절의 시인 이백의 시 제목이기도 한데 내용은 YOLO 정신이다.
링의 성격이 어느 정도 이백의 시 내용과 부합하지만, 흔히 지금에 충실하란 성격하면 연상되는 속물적인 특징은 링에게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작 링은 취미로 시를 쓰며 권능으로 꿈을 넘나든다. 니엔처럼 죽음을 피하려고 딱히 노력하지도 않고 시처럼 겁먹지도 않는다. 죽으면 죽는 거고 아니면 그 또한 좋고. 속세에 해탈한 신선 같다.
그렇다면 장진주는 어째서 장진주인가? 장진주를 기점으로 베히모스 쉐이와 염국의 설정이 제대로 등장하기 시작하고 니엔이 시작한 여정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소개된다. 정작 장진주 자체는 별 내용 없지만 영제 Invitation to Wine이 나타내듯이 이 이야기는 초대장이다. 쉐이 남매 이야기로의.
등림의. 높은 곳에 다다른 뜻.
다른 해석의 여지 없이 등림의의 주인공인 총웨를 지칭하는 말이다. 숴라는 이름도, 베히모스의 대리인으로서의 권능도 버리고 한 사람으로서 오직 스스로를 갈고 닦아 다다른 경지. 백 년 동안 옥문을 지켜온 총웨의 결정을 지켜보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둘째 왕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떤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지 보여준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내용이 무협이라 좋아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 같다. 총웨라는 이름도 한국식으로 읽으면 중악, 겹겹이 쌓인 산악이다. 스스로 품은 뜻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누군가에겐 높은 벽이 되기도 하기에 멋진 작명이라고 생각한다.
회서리. 글자만 보면 기장(볏과 식물)이 무성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뜻이지만 그뿐은 아니고 중국의 고전 시집 시경의 "서리"에서 유래한 제목이다. 주나라 옛 도읍을 찾은 사람들이 번성할 적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기장만 무성하게 자란 모습을 보고 한탄했다는 내용으로, 고사처럼 번영했던 때를 그리워한다는 말도 되지만 회서리의 중심인물이자 쉐이 남매의 여섯째 슈를 그리워한다는 뜻도 된다. 슈의 이름은 기장을 뜻하는 서 자를 쓴다.
베히모스의 심장 같이 후속작 엔드필드에도 등장하는 요소가 처음 나오기도 하고, 둘째 왕의 목적을 비롯해 많은 것들이 밝혀지는 에피소드이다. 작중인물들이 공통의 목적을 위해 전략을 짜는 모습이 나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야기다. 고사에서 유래한 제목이 붙어있는 이야기답게 지에의 옛 죽음이 슈의 죽음으로 재현되지만 그걸 극복하는 구조도 좋았다.
슈의 테마곡 침춘무 Here in Vernal Terrene는 푸젠 남부에서 대만, 광둥 동부에 걸친 민남어 사용 지역의 민요에서 가사를 따왔다고 하던데, 이쪽은 지식이 부족해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 정도로 알고 있다. 명일방주 게임에서 슈의 음성을 중국 방언으로 설정하면 민남어를 쓴다고 하던데, 이 역시 들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멋진 설정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침춘무는 풀을 물에 적셔 봄이 무성하다는 뜻인데 당연히 슈를 위한 곡이다.
상견환 역시 중국의 옛 시에서 유래한 제목이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오대십국시대, 남당의 마지막 황제 이욱이 지은 사(詞, 당대의 운문 형식이라고 함)라고 한다. 제목은 서로 만남을 기뻐한다는 뜻인데 막상 내용은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지식이 부족해 어떤 상황에서 이 사를 썼는지는 모르겠다. 잃어버린 나라를 비유한 것인지 사랑하는 이를 그리며 썼는지.
상견환에서는 쉐이 남매 이야기, 베히모스와 염국에 관한 거의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염은 쉐이 남매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떻게 움직이려 하는가? 둘째 왕은 어찌할 것인가? 그리고 이런 거대한 의도, 국가와 괴수들 사이에서 막내 위가 자신의 뜻을 왕에게 전한다. 상견환 3D PV에서 형누나들을 위해 빈 식탁에 음식을 차리던 모습과 겹쳐 보여서 여러모로 마음에 든 캐릭터였다. 철없는 누나보다 훨씬 어른스럽더라.
이제 사세행만 남았다. 辞岁行, 세월을 말하고자 한다. 말 자체도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완결편에 어울리지만 사세행의 세 자가 바로 쉐이이기 때문에 쉐이를 말하고자 한다는 뜻도 된다.
왕은 이름에 망 자를 쓴다. 삭망의 망.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다. 형인 총웨의 본명이 숴인데 숴가 삭이다. 이름을 보면 왕이 사세행에서 달이 기울듯이 스러져갈 것 같은데 그저 허무하게 지는 모습은 당연히 아닐거고, 어떤 마무리가 될지 정말 궁금하다. 모든 완결편이 그렇듯 이미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밝혀졌다. 누가 뭘 하려고 하는지, 우리가 결말에 어떤 기로에 설지,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여기에 어떤 이야기가 더해질까? 지에는 무슨 글자를 긁어내고 있었을까? 첸은 지에로부터 뭘 계승했을까?
사세행을 기대하는 것과는 별개로, 난 쉐이의 대리인 남매를 중국 스타일의 신선 모에화라고 보고 있다. 중국답게 각종 고사를 첨가한. 슈가 처음 공개됐을 때도 농사를 짓는다는 점 때문에 신농씨 모에화라고 봤는데 과연 스토리에 신농이 나오더라. 일본에서 보던 무분별한 미소녀 여고생 만들기와는 노선이 많이 다르다고 봤는데, 엔드필드에서 공개된 열세째 대리인이 깜찍발랄한 미소녀 스타일이더라. 너네도 좋아했구나 미소녀 여고생... 디자인을 보면 베히모스의 심장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 이미 왕과 지가 비슷한 일을 해내기도 했고, 베히모스의 심장을 만든 셋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있다. 이름이 "사"인데 사세행의 사는 아니고 제사지낼 때 사 자를 쓴다. 결국 쉐이를 잠재우고 이 글자로 이름을 붙였나 보다.
또 쉐이 남매들에겐 각자 고유한 권능이 있는데 이것들 또한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 황제에게 요구되던 덕목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슈의 농사 같은 절대자의 권능 치고는 다소 뜬금없는 능력이 나온 것도 그래서인 것 같고. 사세대, 태수, 염의 황제 진룡도 이야기에 계속 등장하고 갈등을 빚기도 하는데 결국 이들이 뜻을 같이 하게 되는 것도 천자가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는 행위를 비유한 것이 아닐까.
사세행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부디 사세행이 멋진 마무리이길.